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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수시인방

책읽기

by 띤꾸 2014. 9.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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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책 읽기/김문수

남동생의 어린 아들이 있다. 막내 고모인 나를 참 무서워 해서 오랜만에 만나면 서먹하다. 나는 기억을 잘 못하는데 이 녀석 한테는 방학 중 우리 집에 놀러를 올 때면 도서관에 데리고 가서 책을 잔뜩 빌려와서 읽고 감상문을 적으라고 했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 있는 녀석 옆에 앉아 이 그림책의 색깔톤과 얼굴 표정이 어떻게 보이느냐, 책속의 주인공의 좋은점과 너랑 닮은점은 무엇이냐 등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 준다며 지도했던 것들이 내 못된 선생들이 나에게 가르치던 방법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었던 걸 몇 년이 지난 후에야 알게 되었다. 부끄러웠다. 초등학교 시절 나는 책을 좋아하는 선머슴 아이었다. 자전거도 잘 탔다.

우리 아버지는 개집아이가 선 머슴아처럼 동네를 누비며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것을 참 못마땅하게 생각하시면서도 내가 열심히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보실 때면 대견해 하셨다.

나는 그 당시 허클베리핀의 모험이라는 책에 빠져 있어서대나무로 엮은 뗏목을 만들어 연못에 띄우고 그 위에서 선장노릇을 하는 놀이를 즐겼는데 우리 아버지는 여자아이가 다소곳하지 못하다며 무엇이 될려고 하는지 걱정스럽다며 평법하지 않는 자식이라 하시니 졸지에 깡패 기질이 있는 섬 머슴 아이가 되어 버렸다. 

중학생이 되자 학교에서는 교복을 입으라고 하는데 한번도 입어보지 않는 치마였다. 나는 이 세계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치마를 입고 가정 시간에 바느질을 배우는 얌전한 여성이 되기 위한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가정 선생님은 자수의 바늘 한이 바르고 곱지 않다고 다시 튿어 내며 몇 번을 다시 해 오라고 했으며 내가 뗏목을 그리고 수를 놓으면 머리를 툭툭치며 너는 가시나가 아니고, 머스마라!” 하시며 학과 사슴같은 것 십장생을 수 놓으라 강요하신다. 나는 그렇게 수를 놓았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 거기는 더 고된 수업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좋아하는 국어시간에 선생님은 밑줄 그어 입시 시험에 나온다며 외워라. 외워 19세기 표기법, 그 시가 의미하는 조국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정답을 적어가라는 등 선생님이 알려준 정답만 외워서 부지런히 답지에 적어야 한다.이 틀에서 벗어나면 나는 대학을 갈 수 없으며 현실 부적응 학생이 된다.님의 침묵 이라는게 어째서 님이 꼭 조국일 수밖에 없을까?

스승의 님이 여자만 안 되는 법이라도 있는것인지, 참 선생님들은 어째서 한결같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될 수가 있고 뜻하는 것은 무엇이고, 아아 우리 대한민국이라는 가수의 노래가 진실인 것처럼 가르쳐 준다. 그런 현실을 존재하지도 않는데 나는 올해 48이다. 나의 오심은 이렇게 사라져 갔다.

나는 책을 읽고 싶다. 다시 초등학교 시절로 돌아가서 허클베리핀을 읽고 대나무를 엮어 뗏목을 만들어타고 어린 조카와 선장 놀이를 하고 싶다. 내 안의 정답지는 몰아내고 주눅이든 어린 조카도 불러야 겠다. 나에게 책을 많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파이팅이라고 조카 녀석이 보낸 문자를 보면서 문자를 보내본다. 내 어린 조카에게 나도 책을 많이 읽고 내 쪼대로 시를 적어보며 연못 속에서 놀아보겠다고 영원한 선 머슴아로 남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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