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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의 날 부모님 직장에 간다. 어둔술 농장 종이컵에 봉달이 믹스 커피 한잔 타 주시며 손님 대하듯 한다. 오랜만에 찾아가니 이런 호사를 누린다. 가끔 보면 좋은 사이가 된다. 종이컵이 없는지 사용했던 종이컵을 수돗물을 틀어 콸콸 헹구어 낸다. 누렇게 커피 자국이 그대로 있다. 이빨 자국도 그대로 있다. 이걸 마셔? 미적미적 하며 얼른 마시지 못하는 내 모습이 영 서운했는지 “커컬 한척 하지마라!”(깨끗한 척 하지마라) 하며 일침을 놓는다. 독약 마시듯 목구멍 안으로 잘 내려가지 않는다. 눈을 마주쳐 잘 마시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 같은 엄마의 눈살에 홀짝홀짝 마셔본다. 커피 마시는 날 두고선 창고 안으로 부지런히 들어가신다. 검정 봉달이 한 장과 칼을 들고 나오자. “뭐 하려고?”여쭤보니 “간새하지(게으름피우지 말.. 2014. 7. 11.
이주노동자의 비빔밥 이주노동자의 비빔밥/김문수 밤 바다 달 비벼서 먹는다 이런 것 저런 것 섞어 비빈다 비빔밥 밤과 펄럭 펄덕 거리는 깃발 새벽3시 이주 노동자 비빔밥을 먹는다 그물에 걸린 조기 새끼 두 마리 가 헐떡 거리며 튕겨져 나온다 그물과 깃발과 조기가 한 몸둥이로 비빈다 비벼 비벼서 먹는다 짠 땀 짠 눈물 짠 그리움 비벼서 먹는다 짠 비빔밥 photo by 김문수(시의 주제가 된 제주도 한림항) 시 설명 : 제주 한림항에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남의 나라땅에서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들 그들의 짠땀이 있어 대한민국의 식탁이 픙요로울수 있음에 참 고마운 마음으로 적은 시 입니다 2014. 7. 11.
아버지와 독버섯 아버지와 독버섯/김문수 아버지가 버섯을 캐왔다 벌써 두 번째 한번은 작년 봄 독버섯이 섞여있어 온가족 모두먹고 119 살려 갔다 그날 아버지는 버섯을 드시지 않았다 우리 많이 먹이실려고 동네 창피 망신살 봉성리 소문났네 두 번째 이번엔 잘 골라서 캐오셨다 안전 하다고 염려 말라시며 솔향기 흙냄새 맡으시며 미소 짓는다 침이 꼴깍 이번에야 혹시 또? 아버지를 믿어야지 내 동공 사이로 향기가 듬직한 버섯이 오간다 오빠,나,엄마 동시에 젓가락 휘리릭 먹어치우며 역시 아버지 흐뭇한 미소로 드시지않고 우리를 바라 보신다 버섯은 내장속으로 미끄러 들어가고 약간의 콩닥거림 씁슬함 뜨거움 새떼가 지나간다 내눈앞에 희뿌연 새떼가 지나간다 아버지 눈이 안보여 우룽쾅쾅 쫙쫙 소낙비 내린 어디선가 잉아잉아 119 싸이렌소리 아.. 2014. 7. 11.
봄날은 갔다. 봄날은 갔다/ 김문수 주머니 속 애인 처럼 이름이 삼성 마이마이 였던가 팔만원 앞으로 감기 뒤로 감기,반복,재생 해서 듣기 너는 기계였지 사람이 아니고 분명 기계였어 느꼈어 주머니속의 감각 귓곳 음표들의 움직임 새 세상을 가져다 주었지 너 은색의 두꺼운 무전기가 되어 이제 박스 속에 갇혀 버렸어 차갑게 돌아선 애인 처럼 텅텅 비어버린 스텐레스 그위에 노래 부른다 늘어진 테잎 처럼 내가 너를 부른다 봄날은 갔다 2014. 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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