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윈저와 나는 주일 오후에는 뒷뜰에서 바베큐를 굽고
나는 맥주를 윈저는 콜라를 마셨다.
어느날 자신의 손 목에 그어진 상처를 보여주며
"로렌시아 내가 자살할려고 세번 시도한거야"라며
툭 뱉는다.
나는 깜짝 놀라서 왜 자살을 시도했냐고 묻자
"병이지 병 그냥 이유가 없어"라고 담배 연기를 내 뿜는다. "알콜 중독에 세번의 자살 시도, 너 완전 문제가 많았구나!" 했더니 그래도 알콜을
끊은지 30년이 되가니 성공한 삶이지한다.
어두운 영혼의 터널을 잘 견뎌온 그녀에게
훌륭하다고 진심으로 말해 주었다.

이제는 나의 짧은 영어에도 내 말을 잘 알아들었다.
내가 말을 할때면 윈저는 마음모아 집중해서 내말을 경청했다
윈저는 한국으로 돌아가는 나를 아쉬워했고 토론토 공항까지 친구랑 함께 배웅을 했다.
섬세한 정서를 가진 그녀가 홀로 책과 벗삼을
고독한 모습을 그려보니 떠나는 나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녀에게는 하느님이 계셨다.

윈저는 타고르의 시를 좋아했고
그 시인을 알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나를 지적이라 했다. 가끔은 진담인지 농담인지
"너 여기살아 이집 너줄께 .."라고 하며 웃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 윈저는 갑자기 건강이 나빠져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었고
머리로 부터 한 통의 편지가 도착했다.
윈저는 암으로 편안하게 하느님 곁으로 갔다고 했다.
나는 너무 놀랐고 슬픔이 밀려왔다.
마음 속 혼잣말로
" 윈저 너 크로커다일던디 처럼 꽥 하며 한 방에
죽고 싶다더니 뜻대로 되었네 .." 라고 하자
윈저는 나를 보며 슬퍼하지 말라고 씩 웃는 모습이 떠올랐다.

지금도 때때로 바람이 내 머리결을 스치는 날은
윈저가 내게 장난을 걸어오는 것 같다.
큰 귀걸이가 무거워 귓 볼이 늘어진 그녀,
그토록 따뜻한 할머니를 나는 캐나다에서 만났고
친구가 되었다.
우리는 아마도 하느님께서 고독한 영혼들의
만남을 주선해 주었다고 믿는다.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일년후에 유배의 섬
제주도로 방랑의 길을 떠났다 .
애초에 우리모두는 이방인, 유랑자, 방랑자인 것이다.
네 빵을 물 위에다 놓아 보내라. 많은 날이 지난 뒤에도 그것을 찾을 수 있으리라. (코헬 11, 1)
'김문수시인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주 영하2도, 모자 방울을 뽐내며.. (3) | 2021.01.30 |
---|---|
제주 강풍 주의보에 콜라비 밭에서 (4) | 2021.01.29 |
헬렌 여사님의 유창한 잉글리쉬 스피킹에 비자신청을 하다 (5) | 2021.01.26 |
나이아가라 글렌을 걷다 (5) | 2021.01.25 |
물이 흐르 듯 요가를 배우다 (6) | 2021.01.2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