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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직장에 간다. 어둔술 농장
종이컵에 봉달이 믹스 커피 한잔 타 주시며 손님 대하듯 한다.
오랜만에 찾아가니 이런 호사를 누린다. 가끔 보면 좋은 사이가 된다.
종이컵이 없는지
사용했던 종이컵을 수돗물을 틀어 콸콸 헹구어 낸다.
누렇게 커피 자국이 그대로 있다.
이빨 자국도 그대로 있다.
이걸 마셔? 미적미적 하며 얼른 마시지 못하는 내 모습이 영 서운했는지
“커컬 한척 하지마라!”(깨끗한 척 하지마라) 하며 일침을 놓는다.
독약 마시듯 목구멍 안으로 잘 내려가지 않는다.
눈을 마주쳐 잘 마시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 같은 엄마의 눈살에
홀짝홀짝 마셔본다.
커피 마시는 날 두고선 창고 안으로 부지런히 들어가신다.
검정 봉달이 한 장과 칼을 들고 나오자.
“뭐 하려고?”여쭤보니
“간새하지(게으름피우지 말고) 말앙 너멀도(배추) 갖고 가서 데왕(데우쳐) 먹고 국도 끊영 먹어라.”
“빨리 가야 되니깐 다음에 갖고 가쿠다.”
“......”
대답이 없다. 허리에 뒷짐 지고 돌담 사이에 심어진 배추 2포기를 뽑아오신다.
뿌리를 잘라내고, 노랗게 말라버린 배춧잎을 뜯어내니
엄마 뱃속에 웅크려 자고 있는 아기처럼 맑은 노란색 잎들이 얌전히 포개 앉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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